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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함보현] 남북 교류·협력은 불온한가? (칼럼 제684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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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물류포럼 칼럼 제684



남북 교류·협력은 불온한가?



함 보 현 변호사


요즘 같은 때에 참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라며 필요시 전쟁도 마다치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도 이에 뒤질세라 단호한 대응을 공언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가는 언사만으로도 파국이다. 여기에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선언하고 대남기구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우리 정부는 지난해 9월 통일부의 남북대화·교류협력 조직을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폐합했다.

혹한기의 시대, 남북한 관계의 시계가 어디까지 되돌려진 것일까? 남북한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할 것을 다짐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나온 1991년인가. 조금 앞서 북한을 교류와 협력의 대상으로 인정한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선언)이 제시된 1988년인가. 북한 헌법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같은 표현을 삭제한다고 하니 평화통일 3대 원칙에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1972년인가. 그도 아니면 아직 포연(砲煙)이 채 가시지 않은 더 이전의 어느 때인가.

이 시점에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위에서 관계 발전이나, 평화로운 공존 위의 통일을 입에 담기가 무안할 지경이다. 대신 현 상황을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더 있는지, 앞으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 “힘에 의한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무력충돌도 불사한다는 와중에 ‘교류·협력’의 가치에 대해 논하다니 한심하게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변모하더라도 관계 발전, 나아가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그리고 남북한 사이 교류·협력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하여 이미 정치적·사회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전문)할 것을 선언하면서 경제교류와 협력의 실시(제15조),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제16조),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제17조) 등에 합의했다. 비록 당시 국제정세를 반영하고 정권의 필요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대립 일변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 나아가 통일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부단한 교류와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교류와 협력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발전과 공존을 가져오는 밑바탕이 된다는 점은 상식적이고 자명하다. 실제 남북 간 교류·협력은 지난 30여 년간 깊이와 폭을 더해가면서 그 가치를 입증해왔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남북교류협력법) 시행과 함께 대한민국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실제 북측 주민과 교류·협력에 참여하거나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 남북교류협력법 제1조에서 법의 목적을 “(남북 간)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명시한 것도 교류·협력의 역할에 대한 긍정과 합의의 표현이다. 물론 그사이 대립과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분야의 교류와 협력이 면면히 이어지면서 관계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른바 ‘평화로의 회복탄력성(resilience to peace)’이 높아졌다.

남북한의 관계는 오르내림을 반복해 왔다. 지금의 급랭기도 어떤 계기를 맞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날이 올 것이다. 남북이 ‘특수관계’에서 벗어나 ‘양국관계’로 변모할지라도 여전히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이고, 적대 위주가 아닌 평화를 지향한 관계를 만들어 가려면 교류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관계’란 모름지기 서로 얽힘 즉, 어우러짐과 부대낌 속에서 연결의 끈을 놓지 않음을 뜻한다. 남북관계에서 교류와 협력은 관계 파탄을 막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끈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남북한 교류와 협력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가. 소위 ‘질서 있는 교류·협력의 추진’을 기치로 내걸고 ‘남북교류협력 관련 법령 위반이 사회적 문제가 됨에 따라 법과 원칙에 기반한 남북교류협력 체계를 확립해야 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당국이 대다수 민간 접촉을 차단하는 한편, 법 위반 전력자에 대한 접촉신고 수리 거부의 근거 마련과 각종 승인 조건 위반시 과태료 부과를 골자로 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낸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법 위반에 대하여 규제, 처벌할 필요가 있으며 미비한 부분에 대한 법제 정비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민간의 교류·협력을 과도하게 옥죄고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남북 교류·협력 행위 자체를 불온시하고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쌓아온 성과와 역량을 고사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가.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자유로운 통행을 금지하고 길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처럼.

일부의 일탈과 법 위반을 이유로 교류·협력 행위 전체를 이적행위로 위험시하거나 참여자들을 잠재적 공안사범으로 보는 누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적대와 안보 일변도의 시대에 뿌리를 둔 역행이 멈추기를, 교류·협력의 가능성마저 끊어져 빈껍데기인 관계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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