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정보

  • 칼럼
  • 조찬간담회자료
  • 학술회의자료
  • 자료실
  • 학술자료검색
게시판글읽기
제목 [박훤일] MERS가 불러온 상념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7-02
첨부파일 --

KOLOFO 칼럼 제275호


MERS가 불러온 상념들

박훤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소비를 줄이자 경제가 크게 어려워졌다. 정부가 서둘러 추경예산을 집행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막연한 공포심이었다. MERS로 확진 받기 전의 감염자와 함께 있지 않을까 우려한 나머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기피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SNS가 위력을 발휘했다. 정부 발표보다 “…카더라”는 지인들의 메시지를 더 신뢰했다. 6월 말 현재 확진환자가 182명 발생했고 사망자도 33명에 이르렀다. 중동 여행자 한 사람을 통해 국내에 전파된 MERS 코로나 바이러스가 엄청난 피해를 일으킨 것이다. 매일같이 TV로, 신문으로, SNS로 전해지는 MERS 뉴스를 보고 듣다가 세균을 소재로 한 2권의 책이 생각났다.

하나는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콩퀴스타도(conquistadores)가 잉카제국을 무너뜨렸지만 잉카 군대를 전멸시킨 것은 천연두였다는 「총·균·쇠」였고, 또 하나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우려한 천재 과학자가 생존인류를 솎아낼 목적으로 병원균을 이스탄불의 지하 저수조에 살포한다는 소설 「인페르노」였다.

「총·균·쇠」와 「인페르노」

「총·균·쇠」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피사로와 잉카제국의 아타우알파 황제가 처음 만났을 때 168명 대 8만명이라는 압도적인 숫자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황제의 군대는 지리멸렬했을까? 왜 아타우알파는 피사로의 훤히 들여다보이는 함정 속으로 멋모르고 뛰어들어 포로가 되었을까? 직접적인 원인은 스페인인의 쇠칼과 총, 갑옷, 말(馬) 같은 전력이 잉카 군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잉카 제국의 지도층이 스페인인이나 그들의 군사력 또는 의도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간단히 말해서 문자 덕분에 스페인인들은 인간의 행동과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잉카인들은 스페인인들에 대해 전혀 몰랐다. 또한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들을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그보다 앞선 시대에 무수히 일어났던 유사한 침략위협에 대해서도 전혀 듣지도 읽지도 못했던 것이다. 물론 유럽인들에 묻혀 들어온 천연두 같은 세균에 대한 면역력도 무방비 상태였다.

또 다른 책 「인페르노」에서는 미래학(futurology)을 신봉하며 트랜스휴머니즘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FM-2030, DG-2064 같은 닉네임을 사용하면서 나름대로 인류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세균을 퍼뜨리는 비상식적이고 과격한 행동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왜냐하면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란 적자생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간이라는 종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지식과 기술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의주장이기 때문이다. MERS 확진환자들을 ‘14번’, ‘35번’, ‘141번’ 같은 번호로 호칭하면서 이들 슈퍼전파자의 행적과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운 나쁘게도 MERS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뿐인데도 MERS로 인해 유형·무형의 손해를 입은 사람들은 부주의한 그들을 탓하고 비난하기에 바빴다.

은밀한 침투와 밑으로부터의 변혁

여기서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섬뜩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새로운 침입자에 무지하다면, 그리고 지도자가 적시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하여 그 동안 애써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확신에 찬 사람(들)이 은밀하게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그것은 딥 러닝이 가능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인간 비슷한 로봇)일 수도 있고, 영화 「마이노리티 리포트」 같은 미래의 세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는 미군이 실수로 몇 나라에 우송했다고 하는 탄저병 세균이거나 북한군의 화생방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무기란 이와 반대로 북한 수뇌부가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북한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를 퍼뜨리는 남조선의 드라마나 춤과 노래로 치환될 수도 있다. 그래서 「다빈치 코드」를 쓴 작가 댄 브라운은 「인페르노」에서 벡터 바이러스가 든 용기를 터뜨리는 장소(Ground Zero)로 이스탄불 지하궁전(Basilica Cistern) 저수조의 메두사*의 눈길이 닿는 곳을 택했던 것이다. 북한 변혁의 비밀도 여기에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웅장해 보이는 건조물 속에서 은밀하게 사람들의 감각과 본능적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함으로써 다른 체제를 선망하게 만드는‘그것’말이다.

*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메두사는 아테네 여신의 저주를 받아 머리카락이 모두 뱀으로 바뀐 괴물로 변하여 그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돌이 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스탄불의 저수조에는 가장 안쪽의 기둥 밑에 거꾸로 박힌 것과 옆으로 놓인 메두사의 두상 2개가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전글,다음글
이전글 [함보현] 남북 교류·협력은 불온한가? (칼럼 제684호)
다음글 다음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록

* 댓글 (코멘트) 0건

 

댓글
답변글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