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정보

  • 칼럼
  • 조찬간담회자료
  • 학술회의자료
  • 자료실
  • 학술자료검색
게시판글읽기
제목 [곽길섭] 김정은을 움직이는 여인들 (칼럼 제409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4-26
첨부파일 --

남북물류포럼 칼럼 제409호



김정은을 움직이는 여인들

리설주, 김여정, 김설송?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  


최근 들어 김정은 부인 리설주와 여동생 김여정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그야말로 광폭행보로 세간(世間)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김여정 제1부부장(31)은 북한 특사단을 이끌고 방한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도도한 턱선, 그리고 90세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마저도 그 녀 앞에서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모습에서 말로만 듣던 이른바 백두 혈통의 위세를 명확히 보여 주었다. 북한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김정은과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이 노동신문 1면을 장식하고, 우리 특사단 방북시에는 김정은을 밀착 보좌하는 등 정치외교의 전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정은 부인 리설주(29)의 활동도 가히 놀랍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특사단 접견, 중국 방문 등 국가적 행사에 리설주를 대동했다. 북한방송은 지난 28일 건군절부터 그녀를 여사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동향은 퍼스트 레이디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대외적으로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김정은 우상화의 가장 큰 취약점(weak point)이라고 할 수 있는 모() 고영희의 공백을 대체해 나가는 선전선동술의 일환으로도 평가된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또 한명의 숨은 실세 여인이 있다고 한다. 김정은의 이복누나이자 김정일 맏딸인 김설송(44)이 그 사람이다. 지난 3월말 필자는 KBS스페셜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3.29 방영)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는 김설송 위상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방영분에는 첩보와 증언만이 간단히 언급되어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보충할까 한다.

 

사전조사를 담당했던 브리핑요원은 김설송이 정권내부의 모든 정보흐름을 통제하는 조직의 정점에 있다”(켄 고스 미해군 분석국장)고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의 해외출장 제작팀은 2001년 김정일 방러시 밀착 수행한 전 러시아 극동지역 특명전권대표 폴리코프스키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김정일은 딸 얘기를 자주했다. 매우 젊은 아이라고 했는데, 20대쯤 되었을 것이다. 김설송일 가능성이 크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김설송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폴리코스키가 언급한 딸이 김여정일 가능성에 보다 무게를 둔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김설송은 곁가지라는 태생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김정일의 이복형제들은 해외에서 낭인생활을 하고 있다. 김정남은 해외를 떠돌다가 암살되었다. 친형 김정철은 은인자중하고 있다. 김설송도 김정일 생존시에는 어느 정도 보호를 받으며 특정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이후에는 어짜피 곁가지일 뿐이다. 더 나아가 폴리코프스키가 언급한 딸을 설송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2001년은 고영희가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했던 시절이다. 자신의 소생(정철, 정은, 여정)이 아닌 설송이 후계자 감으로 커나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폴리코프스키의 언급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 문제다. 2012년에는 김여정으로, 2018년에는 김설송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일본 NHK방송과 인터뷰 때(5.13 방영/KBS 6.12 특집방송) 김정일은 자식이 4명 있다고 하면서, 그 중 밑의 둘(아들과 딸)이 정치에 관심이 많다. 10년 정도 교육시켜 둘 중 하나를 후계자로 삼겠다고 말했다라고 했다. 만약 김설송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최소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687)에는 이름을 올렸어야 할 것이다. 김정일이 언급한 아들 1명은 분명히 당시 만 17세의 김정은이다. 그런데 딸은 김정은 보다 10살 많은 김설송일까? 아니면 3살 적은 김여정일까? 김정일은 밑의 둘이라고 말했다. 27살 여인을 어리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시는 김정일이 건강한데다 권력누수를 우려해 후계문제를 거론치 말라고 지시했던 시절이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똑똑하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젊은 김정은과 김여정을 마음에 두고 저울질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김여정이 어린 시절부터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2011년 김정일 영결식장에서 김정은 바로 뒤에서 상주노릇을 하고, 이후 김정은을 그림자처럼 수행할 수 있을까? 지난 해에는 30세의 나이에 정치국에 진입하고, 올해는 김정은 특사로 서울까지 왔다. 나이는 다소 어리지만, 개인적 자질에 제왕학 교육까지 더해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유관순 열사도 17살에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순국하였다. 향후 김여정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우리는 그녀가 김정은을 보좌하는 수준을 넘어, 대안(代案) 인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상정해 본다. /

이전글,다음글
이전글 [함보현] 남북 교류·협력은 불온한가? (칼럼 제684호)
다음글 다음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록

* 댓글 (코멘트) 0건

 

댓글
답변글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