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정보

  • 칼럼
  • 조찬간담회자료
  • 학술회의자료
  • 자료실
  • 학술자료검색
게시판글읽기
제목 [민경태] 동북아 지정학과 남북 ICT 교류협력 가능성 (칼럼 제603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7-17
첨부파일 --

KOLOFO칼럼 제603호


동북아 지정학과 남북 ICT 교류협력 가능성


민경태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지정학을 활용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펼치면서 세계패권을 장악하고 유지해 왔다. 1970년대 미소냉전 시기에는 소련과의 대결에 집중하기 위해 공산국가인 중국과 데탕트를 이루는 결단을 내렸다. 1969년 닉슨 독트린에 이어 1972년 미중 국교정상화를 실현하는 이른바 ‘키신저 전략’을 추진한 것이다. 1990년대에는 중국 경제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 경제의 개혁·개방을 지원하는 전략을 시도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과 공산화로 인해 관계가 단절된 지 20년 만에 1995년 미국이 베트남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와 같이 미국은 때때로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이념과 가치를 초월하는 매우 혁신적인 지정학 전략을 펼쳐 왔다.

 

베트남은 한반도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국가이다. 비록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되었지만, 북한과 미국이 베트남을 회담 장소로 선택한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만약 북한이 제2의 베트남과 같이 변화할 수 있다면 동북아 지정학 구도에서 다시 한번 대전환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 후 약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상 현상 변화보다는 기존의 냉전적 대립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한다면 동북아에서의 미국 군사력 유지를 위한 명분이 약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지정학적 충돌 위험이 고조되고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동북아 지정학 전략 변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봉쇄에 대응하여 남태평양 섬나라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맺는 등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 상당기간 중국이 미국의 군사력을 능가하기는 어렵겠지만 향후 5년이 지나면 중국 근해에서 만큼은 해군력이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단순히 지역분쟁으로 머물지 않고 한반도 전쟁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군사 전략가들은 경고한다. 미국 입장에서 관리 대상지역이 여러 곳으로 늘어나고 전선이 확대되는 것은 불리하다.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군사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 핵능력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으나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에서 규탄 성명을 채택하거나 추가 제재를 가하려는 시도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중·러의 협조가 필수적인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전략은 이제 더욱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공격 능력을 사전에 무력화시키는 ‘킬체인’과 같은 선제타격 방안은 군사적 대비책으로는 준비해야 하겠으나 이를 실제로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북한의 핵능력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다면 보복 공격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비록 전쟁에는 승리한다고 해도 사실상 남북이 공멸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공격 능력이 낮은 수준이었을 때 미국이 적용했던 ‘전략적 무시’나 ‘전략적 인내’로 회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한미동맹의 입장에서도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동북아의 냉전적 대립구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활용한 지정학의 대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 세계적인 경제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북한을 활용하는 전략도 검토할 수 있다. 중국을 대체하는 생산기지로서 북한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을 경제안보 차원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한국이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저기술 분야는 북한과 협력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공급망 분리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포린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한국은 북한에 투자해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미국이 구매하는 남·북·미 협력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북한이 보유한 지하자원과 희토류 개발에 한·미가 공동으로 전략적 투자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23일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경제블록 진영 내에서 안정성 있는 공급망 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여기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친환경 녹색기술 등 핵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안보·경제·첨단기술·공급망을 망라하는 포괄적 글로벌 동맹으로 한미동맹의 성격도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남북한이 경제적 협력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면 글로벌 경제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 삼성전자의 휴대폰 공장만으로도 협력업체를 포함한 현지 고용인력이 한때 16만 명에 달하고, 생산액은 베트남 국가 전체 GDP의 20%를 차지했다. 베트남의 경제규모가 북한의 약 7배 수준인 것을 감안한다면, 휴대폰 공장이 북한에 세워졌을 경우 국가총생산이 2.5배나 단숨에 증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첨단기술과 자동화된 공정을 바탕으로 하는 반도체나 LCD 패널 생산시설을 북한에 도입하는 것은 고용유발 효과나 시장진출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ICT 관련 전자제품 생산업종 중에서도 휴대폰 조립산업과 같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북한의 경쟁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을 베트남의 사례가 보여준다. 첨단 통신 시스템 분야에서도 HW 의존성을 낮추기 위한 OpenRAN 표준화가 추진되고 있다. 만약 남북한이 협력한다면 북한에서 생산된 통신장비를 전 세계에 공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동북아 지정학 구도를 전환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상 변화를 추구하는 전략이 아직 한·미의 외교안보 정책결정자들에 의해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현재 동북아의 지정학적 대립구도를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한미 동맹에 불리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이념과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매우 유연한 지정학 전략 변화를 추구해왔던 미국의 입장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와 번영을 확보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현상 변화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과거 미국의 보수적인 닉슨 정부가 매카시즘을 불식하고 중국과의 데탕트를 이루었듯이, 그리고 한국의 노태우 정부가 중·러와 수교하고 성공적인 북방정책을 펼쳤듯이, 매우 엄중한 시기에 출범한 한국 정부가 북한을 제2의 베트남으로 만들고 동북아 지정학의 대전환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본 칼럼은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웹진 ‘이음’ 2022년 7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이전글,다음글
이전글 [윤인주] 동해 북한 어민, 서해 한국 공무원 모두 살리는 방법을 찾자 (칼럼 제604호)
다음글 [김영윤] 미국은 한국의 무엇인가? (칼럼 제602호)
목록

* 댓글 (코멘트) 0건

 

댓글
답변글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