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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지영] 키신저의 세력균형론과 미국의 대외정책 (칼럼 제638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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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OFO칼럼 제638


키신저의 세력균형론과 미국의 대외정책



김지영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헨리 키신저(100)는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2022년 5월 23일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중단을 촉구했다. 이날 키신저 전 장관은 다보스포럼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격파하려는 서방의 시도는 유럽의 장기적인 안정에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러시아는 지난 400년 동안 유럽 권력 구조의 균형을 잡아주었고, 서방이 순간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러한 러시아의 지위와 역할을 잊어버리는 것은 치명적이라며 “러시아가 중국과 영구적 동맹을 맺도록 밀어붙이는 위험도 감수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략당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국제적 법과 규칙을 무시하고 있다"라고 강조하며, 러시아의 행동은 세계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키신저는 재반론을 지면과 발언을 통해 내놓았다. 키신저는 2022년 12월 17일 영국 주간지 <스펙테이터>에 ‘또 다른 세계전쟁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기고문에 러시아의 침공 이전 경계선이 바람직하나 현 전선에서라도 정전하고 영토 문제는 주민투표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2023년 1월 키신저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이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적절하다고 믿는다”라고 말하며, “러시아를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라며 “거대한 핵무장 국가의 불안정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라고 안정적인 세계 질서를 위해 러시아 체제 포용론과 세력균형을 재강조했다.


세력균형이란 어느 한 국가나 연합이 다른 국가나 연합보다 지나치게 강해지지 않도록 여러 국가가 서로 연합을 맺거나 해체하는 것을 말한다. 키신저는 17세기 유럽에서 종교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모든 주권국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체제가 수립되었다고 하며, 이것이 세계 질서의 기본 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9세기 유럽 내에서 나폴레옹과 독일 등의 강대한 적에 대항했던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를 들기도 하고, 20세기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 관계에서도 세력 균형 개념을 적용하여 중국과의 접근 외교를 개시하거나 중동 문제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키신저는 세력 균형은 단순히 힘의 견제와 분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와 체제를 가진 국가들 간에 공존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키신저의 세력균형론과 바이든의 대외정책은 일치하지 않는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탈중동 정책과 함께 대중국, 대러시아 압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첫째, 바이든 행정부의 탈중동 정책은 미국의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해 중동에서의 미군 주둔과 개입을 최소화하고 다른 지역과 이슈에 집중하는 정책이다.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을 통해 석유와 가스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었다. 탈중동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지속하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중동에서 벌인 장기 교전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오바마 정부에 이어 이란과의 핵 협상을 재개할 의사를 밝혔다.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 빈살만 정부의 대외전략은 변화하고 있다. 셰일가스 개발이 후 미국은 중동에서 안보역량을 줄이고 있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의존했던 안보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적 긴장 관계인 이란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의 중재를 통해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다. 2022년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우디 리야드를 방문하면서 걸프협력이사회(GCC)와 이란 간 다자 정상회의를 제안했다. 2023년 3월에는 베이징에서 사우디와 이란 간 대화가 열리고 양국이 외교 관계 복원에 합의했다. 양국은 2016년 이후 단절된 국교를 재개하고 2개월 안에 대사관을 열기로 했다. 또한 사우디 기업가들의 자금 지원을 받는 페르시아어 위성 채널의 이란에 대한 비판 완화, 이란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 국경 공격 조장 중단 등 민감한 문제도 합의했다. 


둘째, 바이든 행정부는 전면적인 대중국 압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간 쟁점에 있어서 무역 · 통상 분야에서 국제 통상규범 정립을 통해 대중국 압박을 시행하고, 핵심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가속하며,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속하고 있다.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내실화하여 이들과의 협력을 통한 ‘집단적 지렛대(collective leverage)’구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외교를 강조하여 중국과 새로운 영역에서도 압박함으로써 갈등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셋째, 바이든 행정부의 대러시아 압박정책은 러시아의 과거 영향력을 복원하겠다는 의지와 충돌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자신의 전략적 이익과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나토 확장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 배치에 반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갈등과 대립에서 발생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가하면서, 유럽의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이번 침공은 미국과 나토의 동유럽 확장 정책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책을 저지하려 한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 대러 압박정책은 중러협력 강화를 촉진하고 있다. 키신저는 나토의 동진과 대러 압박정책을 반대하며, 중러협력 강화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기했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가 극동 지방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개방하고, 총 1600억 달러(약 203조 원)의 중국 투자금을 유치한 사실이 공개되었다. 러시아 정부가 중국에 문을 연 초대형 경제특구의 규모는 러시아 전체 영토의 약 40%에 해당한다. 이번 중국의 대대적인 러시아 투자는 광물 에너지와 인프라 건설, 농업, 자동차 제조업 등 총 79개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양국 간의 협력을 골자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중국은 2022년 이후 외교 및 경제 협력을 더욱 강화했다. 양국 간의 무역은 1,902억 달러로 무려 29.3% 급증했고, 러시아는 43.4% 늘어난 1,141억 달러를 수입했고, 중국은 12.8% 늘어난 761억 달러를 수입했다. 러시아 RIA 통신에 따르면, 2022년 6월 러시아와 중국은 극동지역에 새로운 국경 간 교량을 개통했다. 이 교량은 아무르강을 건너 러시아 도시 블라고베셴스크와 중국 헤이허를 연결하며, 길이는 1km가 조금 넘고 비용이 190억 루블(3억 4,200만 달러)이다.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극동 크렘린궁 대표는 "오늘날 분열된 세계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블라고베셴스크-헤이허 다리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했다. 


아무르강은 냉전 시대 중러 세력경쟁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아무르강의 지류인 우수리강 주변에서 중국과 소련(러시아)는 1969년 3월 2일부터 3월 11일까지 전쟁을 치렀고, 이 전쟁은 헨리 키신저가 중소분리와 미·중 관계 정상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던 주요 변수였다. 그래서 “분열된 세계에서 러시아 중국을 잇는”다는 표현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아무르강의 지류에서 벌였던 1969년 중소전쟁은 미국에 새로운 세력균형의 기회를 제공했다. 반세기가 넘게 지나 중러 양국은 아무르강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량을 건설하였다. 냉전 시대 중소분열이 시작된 곳이 미국에 대항하는 중러협력의 접점이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하는 중동지역과 중러관계의 재구성은 미국 대외정책 전환에 대한 반작용이다. 중국은 이러한 반작용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원 대국을 결합하려 하고 있다. 중동지역의 핵심세력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협력을 촉진하고,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중심으로 기술연합을 추진할 때, 중국은 주권과 내정불간섭의 가치를 기반으로 자원연합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반작용이 미국의 전략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동과 러시아의 협조에 따라 새로운 세력균형의 시작일 수 있다.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키신저의 지정학적 비판은 새 시대를 읽지 못하는 늙은 외교전략가의 기우일 수도 있고, 한 세기를 경험한 지성의 위대한 통찰일 수 있다. 그는 세계 질서(World Order)라는 자신의 저서에 ‘정의로운 무질서보다는 정의롭지 않은 질서’를 선택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정의롭지 않음을 비판하기보다 러시아 체제의 안정성과 세력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의 미국이 추진하는 대외정책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정의롭고 안정적인 세계 질서를 구현할 것인가? 정의라고 믿는 것을 위해 혼돈의 시대를 앞당길 것인가? 그리고 미국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균형은 한반도의 우리에게 얼마나 정의롭고 안정적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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