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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71회] 정기포럼(온라인) 요약자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08
첨부파일 171회_조찬간담회_(온라인_포럼)_회의록.pdf (151(Kb)) 


171회 남북물류포럼 조찬


일시 : 2021224() 15:00-17:00

장소 : 온라인 ZOOM 화상회의

주제 : “개성공단에서 본 북한, 북한사람들 ; 그들과 희망을 나눌 수 있는가?”

발제 : 유창근 대표

-발제 내용 요약-


유창근

개성의 이야기를 아픔과 화해협력을 통한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나눠보고 싶습니다. 준비된 자료를 통해 보면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주제는 개성공단에서 본 북한과 북한 사람들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5년 전, 개성공단이 중단되고 난 후 남북물류포럼에서 개성공단이 중단된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입은 있으나 할 이야기가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서는 개성공단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정권이 1년 남은 상황에서 개성공단은 언제 열릴지 모르는 안타까움과 예측 불가능, 그리고 세계 전체가 코로나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상황 속에 있습니다. 저는 한결같이 개성공단이 열리기를 기대했고, 지금도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중단은 헌법 위반

개성공단의 굴곡진 이야기를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개성공단은 2016210일에 중단됐습니다. 201629일 당시 대변인이던 저에게 여러 방송사로부터 긴급한 이야기들이 날아들었습니다. 비상상황인데, 이대로 가도 되냐는 염려와 우려가 담겨있었습니다. 그 전날 제가 장관께 목숨을 걸어주십시오. 개성공단은 우리 민족의 미래이고, 역사입니다. 장수는 때에 따라 목을 걸어야 합니다.”하고 간곡하게 이야기했던 생각이 납니다. 개성공단이 중단된 후 국회에 나와 장관께서는 불가피한 입장이라고, 북한의 임금이 전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어느 국회의원의 송곳같은 질문에 결국 215일 와전됐다,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과거 우리 정권에서 20105.24조치로 모든 남북교류가 중단될 때, 정권 내부에서도 개성공단만은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134월에 북측에서 잠정중단조치를 취했을 때, 박근혜 정부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무지한 결정은 있을 수 없다며 빨리 개성공단을 열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민간과의 약속인 투자보장을 해주어야 한다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어겼다며 박근혜 정부는 강력하게 항의하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본 UN 사무총장이 나서서 개성공단의 재개를 언급했을 정도로 개성공단의 존재감은 컸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개성공단을 박근혜 정부는 법률적 절차도 없이 구두지시로 전면중단이라는 무모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희들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법률적 보장을 해주었던 우리 정부에 의해 공단이 중지되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헌법소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은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기본권 침해로, 헌법 제23조에서 보장한 국민의 재산권 보장에 대한 권리를 물었습니다. 위헌적 사건이 과연 옳은 일인지 따져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나, 5년이 지나도 헌법재판소에서는 판결이 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개성공단 중단사건을 5년째 맡은 변호사가 이렇게 길게 결정을 못 내리는 사건도 드물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이 재개되기만을 원하면서, 또 인내하면서 5년을 보냈는데, 그들 중 상당히 많은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서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개성공단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입니다. 저희가 여러 절차에 따라 개성공단에 관한 사안을 설문조사 등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개성공단이 중단되고 난 후 개성공단의 가치를 더욱 크게 인식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의 중단으로 기업들은 하나 둘 기회를 잃어가고, 문을 닫고, 몇몇 기업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고, 분쟁으로 인해 아픔도 겪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니 우리는 개성공단의 가치를 너무 몰랐던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은 물론, 당선 후 한결같이 개성공단의 재개를 위해 애쓰겠다는 말을 우리들에게 했습니다. 그러나 1년밖에 남지 않은 정권으로서는 이제 기회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권이 들어온 시점에서 바로 시작했어야 조처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코로나로 어려워진 세계 경제 속에서 개성공단이라는 사업은 남북이 서로 교류하고 교감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로만 느끼게 됩니다.

남북관계는 일반적 국제관계와는 달라

개성공단에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은 지금도 생생하고, 소중한 기억입니다. 2004년 정부는 남북경협의 옥동자라면서 개성공단을 크게 소개하고 설명했습니다. 일부 투자보장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걱정하지 말 것을 말하며 정부가 보장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개성공단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기업들이 정부를 믿고 투자를 결정했는데, 항간에는 투자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합니다. 남북관계는 일반적인 국제관계와는 다릅니다. 그 특수성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저에게는 사실 남북경협과 개성공단에 대한 지식과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창설준비위원회를 할 때 김동근 관리기관 이사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이 참여해 개성공단에 관한 꿈과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20046월 시범단지를 조성할 당시에 한국토지공사에서 부지 28000평을 조성해두고 각 기업의 깃발을 꽂아 위치표시를 해 놓은 것을 보러갔습니다. 물도 전기도 인프라도 전혀 없는 허허벌판에 6개월 만에 공장을 가동시켜야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를 보고 쇼라고 했습니다. 2000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약 4년 동안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하고, 가끔 요란하게 행사만 하는 우리 정부를 보며 신뢰가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안에 공사를 준공하여 공장을 돌리겠다고 하니 북쪽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업인의 생명은 약속이며,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현대 부회장에게 견적도 받지 않고 발주를 했습니다. 시간이 긴급하다고 판단했기에 현대에서 공장을 지어줄 것을 부탁했고, 현대는 공장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개성공단을 열렸고, 저는 도전을 했습니다.

근로자가 관리자가 되다

다음은 개성공단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04년도에 저희가 채용한 북한 인력들의 사진을 함께 보겠습니다. 저분들의 옷차림은 저래도 북한의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력들이었습니다. 제가 북한 당국에 요청을 할 때, 북한 최고 엘리트들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에서는 싼 노동력을 가지고 일하려고 개성공단을 지은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통해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인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방식으로 개성공단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직책을 주고, 임명장을 만들어 주고 각자에게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그것은 북한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일단 저는 독단으로 임명을 강행했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개성공단 근로자로 왔다가 개성공단의 관리자가 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북한의 인력을 양성하는 사관학교가 되어 갔습니다. 우리가 교육한 인력들을 북한 당국이 빼어갈 때에는 처음에는 강력하게 항의를 했었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교육시킨 인력을 빼간다면 북한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간곡한 사정을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우수한 인력을 만들어서 시장경제를 배우게끔 하고 이를 통해 더 넓게 더 많이 북한을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준공행사 때 저는 개성공단에 500, 5000명을 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백만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제품은 '기술'인데, 이 볍씨와 같은 기술을 보급해서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 되도록 하겠다는 꿈을 나누었고 이를 들은 북한 사람들은 기대했습니다. 저희는 개성공단 최초로 컴퓨터 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교육 자료를 만들어서 사전에 이를 공유했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저희 회사는 SJGS라는 이름으로 소통을 했는데, SJ테크는 남쪽에 있는 저희 회사의 이름, GS(개성)는 개성공단에 있는 저희 회사의 이름입니다. 남과 북이 긴 분단의 역사 속에서 소통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소통에 관한 교육 책자도 만들어서 북쪽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이 책을 북한 사람들이 몽땅 외우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이 기억납니다. 또한 교육을 할 때 너무 많은 질문을 주어 결국 교수님들을 모시고 올라가서 교육을 했습니다. 이것이 SJ테크 개성기술학교 탄생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데스크 탑 컴퓨터를 교육장에 설치해 두고 SJ테크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IT 교육을 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우리를 향한 벽이 점점 허물어지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일요일에도 북쪽 근로자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기업의 사장님들이 어떻게 SJ테크는 일요일에 북쪽 직원들이 나와서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교육장에 있는 컴퓨터에 어린아이도 어른도 좋아할 만한 게임을 깔아두었더니 일요일에도 게임하고 싶은 근로자들이 몇 십리 길을 걸어서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통근버스도 우리 회사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희망이 하나둘씩 쌓여갔습니다.

개성공단의 사명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업무 시간 중간에 회사 운동장에서 체조를 하고 있는 데 이것을 '업간체조'라고 합니다. 이 시간이 아주 즐겁습니다. 남쪽 직원들도 함께 어울려서 체조를 하는데, 이렇게 서로 어울려가면서 소통하고 교류하는 모습들이 하나씩 둘씩 생겨났습니다. 개성공단에 여러 번 외신 기자들이 방문했는데, 우리나라를 통해서도 오고, 북쪽을 통해서도 왔습니다.

이하생략(첨부파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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